
내 집 마련이라는 숙제 앞에서 많은 분들이 평수나 가격, 위치 같은 숫자들에만 집중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집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 그 자체죠. 오늘은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의 이야기를 빌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파트 공간의 숨겨진 가치와, 좁은 집도 넓고 풍요롭게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솔직하게 풀어볼까 합니다. 획일화된 아파트 대신 나만의 가치를 담은 공간을 만드는 지혜를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고층 아파트, 높이만큼 가치가 따라올까요?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층에 살면 탁 트인 시야를 가질 수 있고, 멀리 보이는 하늘과 풍경을 '내 공간'처럼 시각적으로 소유하는 듯한 심리적 우월감과 안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유현준 교수님은 이를 '권력의 양을 누리는 공간의 체적'에 비유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천장고가 높을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 설명합니다. 높은 층의 아파트가 가격 면에서 더 비싼 이유도 이런 공간의 심리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건, 예전에는 고층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보일러 효율이 좋지 않고 단열 기술이 미흡해 12층 아파트의 로얄층은 오히려 6-7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일러 성능이 좋아지고 엘리베이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의 선호도가 고층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자 동네 언덕 위의 집들이 비싼 이유도 차를 타고 엘리베이터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술 발전이 주거 공간의 가치 판단 기준을 크게 변화시킨 셈입니다. 다만, 건축가는 도시에서의 익명성은 좋지만 너무 고층으로 가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타인과 너무 자주 마주치는 등의 불편함도 언급하셨습니다.
건축가가 추천하지 않는 아파트 형태, 왜 그럴까요?

유현준 교수님이 건축가로서 추천하지 않는 아파트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하셨습니다. 첫째는 '발코니가 없는 아파트'입니다. 많은 분이 발코니를 확장해서 실내 공간을 넓게 쓰지만, 이는 공간의 다양한 층위(레이어)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한옥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사랑방과 안방 창문이 서로를 바라보며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처럼, 발코니는 실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중간 공간 역할을 하거든요.
둘째는 '벽식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입니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벽식 구조로 되어 있어 방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있고, 이 때문에 집이 실제보다 더 좁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방과 방 사이의 시야가 막혀 있어 심리적으로 답답함을 유발하죠. 제가 20년 전 17층 아파트에 살 때는 창문 여는 것도 무섭고, 바깥 풍경이 너무 멀어 실감 나지 않아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3층 아파트에 살면서는 창밖으로 나무, 꽃, 산책하는 사람들과 강아지들이 보여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환기도 자주 시키고요. 이런 경험을 해보니 교수님이 말씀하신 외부와의 연결감과 발코니의 중요성에 더 공감하게 됐습니다. 교수님은 오래된 아파트의 고질병인 '주차하기 힘든 아파트' 또한 최악의 조건으로 꼽으셨는데,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저도 상상만 해도 답답합니다.
우리 집을 더 넓고 특별하게 만드는 실천 팁

좁은 공간이라도 심리적으로 넓게 느끼는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유현준 교수님은 공간이 '좀처럼적인 물리량'이 아니라 '기억의 총합'이라고 강조합니다. 다양한 기억을 만들어주면 그 공간은 더 넓게 느껴진다는 뜻이죠.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조명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천장의 메인 조명 하나만 켜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보다는 스탠드 조명처럼 작은 조명들을 여러 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밝은 백색 조명보다는 약간 노란색이 나는 조명을 활용하면 모닥불을 피워놓은 듯한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침대 밑이나 벽의 코너, 심지어 집안의 사각지대 같은 곳에 작은 조명을 두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충전식으로 되어 아무 데나 옮겨 다닐 수 있는 작은 조명들도 많으니 활용해보시면 좋을 거예요. 가구 배치 또한 중요합니다. 거실에 큰 테이블을 두기보다 최소한의 사이즈로 줄이고, 소파를 베란다 방향으로 두는 등 시선을 확장하는 배치를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 교수님은 발코니 확장을 안 한 상태에서 여러 레이어를 만들고, 슬라이딩 문을 활용해 공간에 다양한 경로를 만들어주면 훨씬 넓게 느껴진다고 조언하셨습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우리 집을 더 풍요로운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획일화된 아파트, 미래는 어떻게 바뀔까?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70-8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표준화와 대량 생산'이라는 키워드 아래 빠르게 지어졌습니다. 당시에는 모델하우스만 지어도 분양이 잘되던 시절이라 건설사들이 굳이 다양성을 추구할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4인 가구에서 1인 가구로 변화하고,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1인당 사용하는 공간의 양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공간에 대한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건설사들이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평면도를 만들어도 소비자의 과반수가 기존 평면을 선호하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안전한 길을 택하더군요. 미래의 주거 공간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유현준 교수님은 냄새에 민감해지는 현대인의 특성을 고려해 부엌과 같은 냄새 나는 공간은 한 곳으로 묶고, 거실과 침실은 자유롭게 구획할 수 있는 유연한 평면도를 제안했습니다. 또한, 성수동 공장처럼 기둥식 건물이 오랫동안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듯이, 미래 아파트도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식 구조로 지어져야 50년-100년 뒤에도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비어있는 상업 공간을 주거 공간으로 전환하여 도시 풍경을 다채롭게 만드는 방안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해요. 세금이나 주차 문제 같은 제도적인 해결이 필요한 과제이기도 하죠.
우리가 사는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됩니다.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지어진 공간 속에서 나만의 가치를 찾아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높은 층이 주는 시각적 해방감도 좋지만, 나무와 꽃, 그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저층의 아늑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가치죠. 결국 어떤 공간이 '좋은 집'인지는 사는 사람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에게 '뛰어난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 체크리스트
- 천장 메인 조명 대신 스탠드 조명 여러 개 활용하기
- 노란색 계열의 간접 조명으로 아늑한 분위기 연출하기
- 집안 곳곳의 코너와 사각지대에 작은 조명 배치하기
- 소파나 가구 배치를 외부 풍경과 연결되도록 고민하기
- 발코니 확장 대신 슬라이딩 문 등으로 공간에 레이어 만들기
- 주차 환경이 편리한지 미리 확인하기
- 집값이 아닌 '공간 디자인' 관점으로 우리 집의 가치 다시 판단하기